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052형 구축함 (문단 편집) == 건조 배경 == [[중국]]은 1960년대 [[중국-소련 국경분쟁]]으로 인한 [[소련]]과의 외교관계 악화로 1980년대 초반까지 군사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는 중국 해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공군이나 해군의 경우 소련과의 관계 악화 전에 받은 [[MiG-21]]이나 [[T-55]]을 역설계한 [[J-7]]이나 [[59식 전차]]를 기반으로 무기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지만[* 육군이나 공군도 해군에 비해 상황이 좋았다는 거지 이들 역시 심각한 상태였다.] 해군의 경우에는 소련으로 받은 함선이 별로 없어 기술의 기반이 없다는 점과 군함은 다양한 무장과 장비의 조합이라는 복잡한 물건이라는 점에서 공군이나 육군에 비해 상황이 더 좋지 못하여 1970년대 주력함인 [[051형 루다급|루다급]]의 경우에는 1951년에 소련에서 건조된 [[코틀린급]]을 기반으로 건조한 함선임에도 [[대함 미사일]]을 장착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제2차 세계 대전]] 시의 구축함과 별 다를게 없는 수준이였다. 중국은 [[대만]], [[남베트남]]과의 해상 분쟁을 통하여 해군 발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문화대혁명]]이 끝난 1970년대 해군에 대한 투자는 늘었지만 해군은 기술기반이 약하고 기술 도입선이 없었기에 해군력 증강의 한계가 있었다. 중국은 1980년대 서방 세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게 되면서 해군의 현대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첫 번째로 구축함급의 건조를 시도하게 된다. 루후급은 건조 계획은 1985 전후로 중국의 선박 설계 회사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중국 해군은 지금까지의 구형 함선과 확연히 구분 될수 있는 함선의 건조를 원했기에 대공 미사일과 레이더는 프랑스제로 주요 전자 장비와 [[가스터빈]] 엔진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LM2500를 도입하는 등 서방의 장비과 기술을 대거 도입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1989년 중국의 [[천안문 사건]]이 터지면서 무기 수입에 제한이 걸린데다가 비용이 상승하면서 건함 계획은 늦추어졌고 그로 인해 1번함인 하얼빈은 1991년 진수되었음에도 취역은 1994년 7월에나 가능하였고 2번함인 청도는 미국이 엔진의 수출을 거부함에 따라 [[우크라이나]]제 엔진을 수입하여 건조 1993년 진수되어 1993년 6월에 취역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